안티 크리스트 (Der Antichrist) - 프리드리히 니체
2025-07-13
안티 크리스트 (Der Antichrist) - 프리드리히 니체
학업에 치여 책을 오래 멀리하다가 오랜만에 손에 들어올린 책이다. 본업의 단조로움과 명료함에 질린만큼 철학서를 읽고 싶었고, 가장 친숙한 니체의 가장 친숙한 책을 읽기로 정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차라투스트라는 말했다’에 비해서 다분히 울려오는 감동이 적었다. 차라투스트라를 명서로 꼽는 이유가 있는가 싶다. 니체의 사고관과 철학을 이미 다른 저서로 경험한 뒤 읽은탓일수도 있겠으나 이전에 읽은 책에 비해서 직설적이고 문장의 의도가 명료한 탓이 큰 것 같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는 책은 모두 비유로 이루어져있다. 마치 하나의 경전이나 문학을 읽는것처럼 주장하는 바가 뚜렷하지 않고 독자의 해석으로 하여금 재가공되기를 요구한다. 물론 니체의 철학이 견고하고 그 문체들에 뚜렷한 목소리가 녹아있기 때문에 독자들이 임의로 잘못 해석할 여지가 크진 않다. (그러나 어려운 책이기 때문에 많은 독자들이 독자적인 행태로 오독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사실 나도 그런지 모르겠다.) 핵심적인 것은 그의 명서의 강인함은 주장의 명료함이나 수사적 행태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있는 단단한 철학과 신념에서 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책 안티크리스트는 수사적이다. 즉 주장하는 바가 명확하고 또 독단적이다. 애초에 그렇게 쓰인듯 하지만 그리스도교에대한 맹렬한 비판을 책의 전신으로 삼고 있으며 문장은 냉혹하고 자비는 찾아볼 수 없다. 가장 아쉬운점은 논리와 근거가 부족하다는 것이다. 책이라는 것이 또 철학서라는 것이 논설문이 아니기 때문에 모든 주장에 근거를 제시할 필요는 없다. 오히려 그렇다면 심오함을 잃어버리고 단조로워진다. 그러나 상대편을 맹렬히 비판하려는 책이라면, 그 정신의 고귀함을 지키기 위해선 차분하고 명석한 논리들을 들이 밀어야 한다. 그것이 책의 전부를 구성하지는 않더라도 날카로운 어조에 지친 독자들을 그런 마디에서 쉬어가도록 해야한다. 점잖은 신사다움이 설득력을 단단히 하기 때문이다. 니체가 이런것을 몰랐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가 저서에서 말한것처럼 그리스도교에 잠식된 (병든) 사회나 개인에게 논리는 아무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그들은 자연성이나 논리와는 적대적인 사람이고 이미 현실과는 맞닿아 있지않은 공상의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니체도 점잖은 반박을 내세우기보단 그들처럼 감정적으로 또 선언적으로 글을 써내려갔는지 모르겠다. 독자의 감동이나 경탄을 일으키진 못하지만 이런 방식이 세상에 반향을 일으키고 그가 지적하는 오류들을 바로잡을 힘을 가지기 때문이다. 이 책이 받은 가혹한 혹평과 비판은 역설적으로 이 책에게 힘을 주었을 것이다.
사회적 반향을 일으키는 성질을 가졌다는것, 선언적이긴 하지만 여전히 니체의 견지와 독특한, 통찰과 혜안을 가지고 있다는 것. 시대정신에 반하는 혁명적 가치를 지닌다는것. 여러면으로 보았을 때 역시 좋은 책이다. 또 다른 책들보다 수사적인 탓에 오히려 작품 자체가 친숙하고 읽기 쉽기 때문에 대중의 독자들에게 입문서로서 추천된다는 것. 충분히 가치있는 저서이다. 하지만 니체의 저서 중 제일을 꼽으라고 했을 때 나는 이 책을 고르지는 못하겠다. 그의 정수와 저서에 묻어나는 감동은 다른책에 더 진실되게 녹아있다.